잘하는 것과 되게 하는 것 '잘하는 것'과 '되게 하는 것'은 다르다. 물론 이 둘을 같다고 범주화 할 수도 있겠지만, 이글은 둘을 분리해서 바라본다. 이를테면 '잘하는 것'은 그 사람의 업무적인 숙련도가 높고, 하드웨어적으로는 민첩성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대체로 집단 내에서 능력자로 여겨진다. 이에 반해 '되게 하는 것'은 결과에 대한 직관을 유지하면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양보하고 참아주고 화해시키는 역할을 감내하는 성향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대체로 인품이 좋아서 사랑 받지만 '잘하는 것'에는 소질이 없거나, '잘 하는' 사람이면서도 '잘 하는' 아우라가 없다는 이유로 저평가 되곤한다. 사실 '되게 하는' 성향의 사람들 중에 결과에 대한 직관과 이를 실현되게 하는 강력한 의지에 따라서 자기를 희생하는 야심가형은 실제로는 드물고, 이들의 심성 자체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빌트인되어 있거나, 각박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로 이타적 성향이 고양된 경우가 많다. 그것이 형성된 맥락이 무엇이건 이러한 성향은 아주 귀한 것인데 이들이 없는 조직은 윤활유나 볼트 없는 기계처럼 위태롭다. 하지만 이들의 공헌은 일이라는 콘텐츠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진행되고 만들어지는 컨테이너인 문화가 훌룡해지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이 되게 하는' 성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세상인심은 성과라는 콘텐츠에만 관심하고 그것이 만들어지고, 담겨지는 컨테이너인 문화에는 무관심할 뿐 아니라 컨테이너에 대한 성취를 평가받는다고 할지라도 오피셜한 권력인 경영자나 리더가 공을 독식한다. 혁신은 고도의 문화적 산물이다. 단순히 '일 잘하는' 성향을 기계적으로 으깨놓는다고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잘하는' 것과 '되게 하는' 것이 화학적으로 잘 결합된 문화가 혁신적인 성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되게 하는 것'은 그것을 증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쉽게 폐기된다. 혁신도 함께 폐기된다. 2012/05/10 1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