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애도란 비판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당사자를 둘러싸고 있던 가능성과 한계를 온몸으로 경험해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비판은 결과를 놓고 다투지만, 애도는 선의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이 비판이 어찌나 매몰차던지 그는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진보는 일찌감치 그를 버렸고, 얼마후에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도 등을 돌리거나, 침묵했습니다. 그의 비판자들이 지금 와서 그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것은 그 선의만큼은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른 의인으로 그를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죽음을 애도하지 않습니다. 악의를 품고 간 함량 미달의 죽음까지 애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당사자가 돼 본다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네요. 애도란 당사자가 직면한 고독을 간접경험 해보는 것이기 때문이죠. 어차피 당사자란 고독한 법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선택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선택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고독은 고문이 됩니다. 선택할수록 혼자가 되고, 그 끝에서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됩니다. 애도란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 가지고 있는 부엉이 바위 위에 올라가보는 것입니다. 차분히 아침을 맞이하는 세상을 당사자의 눈으로 마주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보는 것입니다. 아 피지도 않는 담배가 피고 싶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애도에는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애도기간. 이 말을 뒤집어보면 언제까지 애도만 할 수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끝나지 않는 애도를 종교라고 부릅니다. 노무현은 위인이었지만, 성인이 아닙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 나라의 정치에 또 하나의 유령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실 그 전부터 유령이 있습니다. 박정희입니다. 이 유서 깊은 망령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정치를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그 대리인은 아무런 실체 없이도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입니다. 한국정치가 박정희와 노무현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다음 대선이 죽은 이들 간의 승부가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있는 시대정신 간의 대결이 되기를 원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좌우, 지역 간의 구도가 아니라, 좀 더 폭넓은 가치가 충돌하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것이길 바래봅니다.
애도의 기한 따위를 특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언제까지 당사자로 남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천천히 비판자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공과를 질서정연하게 평가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던 노무현
그가 보고 싶습니다
2009/05/31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