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강남역 리브로가 중고서점으로 리뉴얼했다. 교보문고의 패권을 인정한 것이면서, 동아문고처럼 호락호락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전의마저 느껴진다. 옛것에서 새길을 찾은 샘이다. 그런데 막상 서점에 들어서니 모종의 딜레마가 느껴졌다. 좋은 책이란 모름지기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면서 거래가 아니라 공유하고 싶은 책이다. 이것은 딜레마가 된다. 판매자는 좋은 책을 안 내놓고, 소비자는 좋은 책이 없을거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적인 진공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고가 내포하고 있는 '싸구려'라는 고정관념을 타도해야한다. 세상에는 경제학의 감가상각비를 비웃는 잘난 중고가 얼마나 많은가? 크린티스트우드의 그랜토리노가 그랬고, 구텐베르크가 찍어낸 성서가 그랬다. 유구한 세월을 간직한 이 의미심장한 '중고'의 가치는 '신상'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다. 중고서점이 저렴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 절판되면서 희귀해진 아쉬움, 탐독하던 위인의 손때, 역사적인 의미심장함을 구비해놓고 고가로 판매하는 것이다. 헌책은 새책보다 싸야한다는 고정관념을 조롱 하면서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또, 책에 대한 이중적인 위선을 공격해야 한다. 책을 깨끗하게 봐야 한다는 위선 말이다. 나는 나와 당신이 학창시절 교과서에 한 짓을 기억한다.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집어 던지고, 제목 고치고... 이것은 억압에 대한 저항이면서, 금기의 전복이었을 것이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학창시절은 얼마나 삭막했을까? 그러다 교복을 벗고 사회인이 된 학생들은, 일제히 이 짓을 청산한다. 속죄할 것이라도 있는 양 지극정성으로 책을 공양한다. 어떤 이는 손을 씻고 책을 본다고 그러고, 다른 사람은 지저분해진 책 때문에 절교를 했다고 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책에게 설설 기었단 말인가? 우리는 원래 책을 깨끗이 보지 않았다.
연장 선상에서 깨끗한 책보다 더러운 책에 더 높은 값을 책정하는 것은 어떨까? 훼손된 책을 후하게 평가하자는 말이 아니라, 전 주인의 숨결이 담겨있는 책의 가치를 높이 사자는 말이다. 꼼꼼하게 기록된 상념과 아름답게 아로새겨진 낙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밑줄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흔적들은 서로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 서로 다른 독자들을 연결해준다. 멋지지 않은가? 이 흔적들을 따라서 제삼자의 이성과 감성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 운이 좋으면 부주의하게 북마크된 연애편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또 이 흔적을 따라 새로운 인연이 맺어질지 누가 아는가? 오래된 미래.
+ 입고된 책에 바코드를 붙이고, 책의 여정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연계한다.
+ 서점에 필기구 준비하고, 누구든지 책에 생각을 적을 수 있도록 한다.
+ 절판된 책, 역사적인 책, 유명인들의 책을 고가로 판매한다.
+ 책 더럽게 보기 캠페인, 새 책보다 비싼 헌책 캠페인을 벌인다.
+ 책방의 이름으로 '낙서' 혹은 '오래된 책들의 도시' 이런 건 어떨까?
+ 입고된 책에 소독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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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더럽게 돌려보기 2009/06/11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