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마음이 힘들 때 난 원인을 분석한다. 분석이 끝나면 마음은 진정 국면에 접어든다. 타인의 시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고, 견딜 수 없는 것도 견딜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걸 블로그나 트위터에 올린다. 특히 그것이 부끄러운 치부일 때 공개라는 행위는 일종의 '고해성사'와 같은 의미를 띄게된다. 확실히 솔직함은 죄 사함의 느낌을 갖게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인터넷을 통해서 나의 치부를 공개하는 것은 종교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인 회개와 닮아있다. 원래 자연상태에서 절대적인 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어나야 하거나,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란 인간과 사회가 만든 가상의 규범인 것이다. 자연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만 일어나니까. 이 과정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죄를 짓게 되고, 그것은 죄의식이 되어 인간을 단죄한다. 그렇다 보니 인간은 이 누적된 죄의식을 해소할 메커니즘을 필요로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종교다. 절대자를 상정하고 보안이 보장되는 기도를 통해서 죄를 털어 놓는다. 죄 사함의 느낌을 갖게되고, 죄의식에서 자유로워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포스팅이란 일종의 기도다. 죄가 사해진 것같은 느낌을 갖게하니까. 그런데 솔직함은 아무것도 사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죄의식을 희석시켜줄 뿐 죄를 사면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회개와 같은 반성은 반성함으로써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 해마다 누가 노벨상을 받을 것인가를 두고 전세계가 시끌시끌하다. 난 이것이 정말 코믹하게 느껴진다. 다이나마이트를 통해서 수 많은 사람을 죽게한 이를 추모하는 상이다. 그의 반성은 물론 의미있는 것이지만, 반성은 반성일 뿐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반성이란 죄와 죄의식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의미있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솔직함을 빙자해 마음속의 불편함을 덜어내려는 내가 나는 불편하다. 특히 반성문 자체가 일종의 포스팅 꺼리가 되어 방문자 수에 대한 뿌리 깊은 욕망을 확장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은 속물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 2009/12/20 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