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LR의 승천
DSLR의 승천
너도나도 DSLR을 들고 다닌다. 이제는 회사에서 콤팩트 카메라를 볼 수가 없다. 기껏해야 내가 들고 다니는 200만 화소 폰카가 고작이다. 왜 무겁고, 못생기고, 어렵고, 비싸고, 동영상도 안 되는 DSLR이 이렇게 잘 나가는 걸까?

지금까지 소비자가 카메라에게 요구하던 가치는 앞서 말한 DSLR의 가치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볍고, 이쁘고, 쉽고, 동영상도 되는 것을 원했다. 캐주얼한 컨버전스라고 할까? 그러나 이러한 가치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이것은 시대정신의 문제일 것이다. 시대정신은 진보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것에는 좋고, 나쁨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단지 동시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콤팩트 카메라는 그 역활을 훌룡히 소화했다. 카메라를 가족단위의 장비에서 개인단위의 소품으로 끌어내렸고, DCinside에서는 생활예술로, 싸이월드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진을 개인에서 집단적인 활동으로 끌어올렸다. 처음부터 DSLR이 주류였다면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경험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콤팩트 카메라가 시들해지고, DSLR이 주류로 등장하고 있다. DSLR은 어떤 가치를 대표하는 것일까?

사진을 잘 찍는 것이 아닐까? 물론 DSLR이 좋은 사진을 찍어주지는 않는다. 좋은 사진은 고도의 장인정신과 운이 필요한 활동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만큼. 소비자들은 저렴해진 DSLR을 통해 간편하게 장인이 되려 한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는 환상이다. 그럼 이런 환상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명품은 누가 애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메릴린 먼로가 걸치고 잔다는 샤넬 No.5 향수,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포토샵, 타이거 우즈가 들고있는 나이키 골프채는 명품의 조건이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은 장인들의 도구를 통해 그 성취의 일정한 지분을 구입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는다. DSLR은 과거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던 DSLR은 좋은 사진에 대한 환상을 저렴하게 매수하기 시작했다.

DSLR은 못생겼다. 못생긴 것이 환상의 구성요소라니 우습지 않은가? 우리는 아름다움의 의미가 유례없이 좁아진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은 '아름답다'와 '예쁘다'를 혼용하면서 생긴 문제이다. '예쁘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업은? 애플이다. 애플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쁘다. 물론 아름답다. 애플의 정반대 편에서 성공한 기업인 구글은 어떤가? 못생겼다. 그러나 아름답다. 못생겼지만 아름답다니. 이 이상한 결론을 비난하기 전에  오른쪽에 있는 뒤러의 그림을 보자. 자 나름대로 느낌이 정해졌는가? 그럼 다시 생각해보자. 그림속 주인공은 뒤러의 어머니이다. 그림이 여전히 못생겨 보이는가?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의 첫 페이지에서 못생긴 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뒤러의 솔직한 어머니의 초상을 통해 보여주었다. 깊은 주름과 소중한 무엇인가를 지키기려고 의심의 눈초리로 응시하고 있는 노안은 추하지만, 뒤러에게는 아름답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아니었을까? 구글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 추한 그림이 아름다운 것과 비슷하다. 복잡한 화면설계, 메타포의 남용, 그에 따르는 엄청남 트래픽, 느린 로딩..... 이것을 불합리하게 생각하게된 사람들은 구글의 디자인에서 허영이 아닌 솔직한 합리주의를 발견했다. 그래서 구글은 못생겼지만 아름답다. 결코 '이쁜것'을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니다. 예쁘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수 있다는 점을 구글과 애플 통해 표현한 것이다. 문제는 불안이다. 예쁘지 않으면 버림받을 것이라는..... 아름답다는 것과 예쁘다는 것을 동일시하는 미학적 소갈머리를 극복할 수 있는 자만이 자유롭게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다. DSLR은 못생겼다. 그러나 아름답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DSLR은 복잡하다. 요즘들어 쉬운 사용성은 '이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정작 대중이 DSLR을 원하는 이유는 수동모드이다. 이들은 수동모드를 통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복잡한 유저인터페이스는 초기사용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이를 통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가치만 선명하다면 사용자들은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못생기고, 복잡하고, 무겁고..... 이런 퇴행적인 것들이 대중을 움직이는 가치였단 말인가? 물론 아니다. DSLR은 환상을 마케팅 하지만 그 환상의 이면에는 현실을 담아내는 영악함을 가지고 있다.

DSLR이 못생겼다는 의견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요즘은 잘 차려입은 여자들이 '못생긴' DSLR을 들고 있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남자 친구에게는 백을 맡기고, 카메라는 자기가 들고. 보통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 착해 보인다. 복잡한 디지털 기기를 능수능란하게 조작할 수 있을 것 같고, 현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기자의 이미지도 오버랩 되는 것 같다. 지적으로 보인다고 할까? 쿠폰챙기는 남자를 비하(?)했다 졸지에 된장녀로 몰린 김옥빈. 그녀의 부활은 엉뚱하게도 컴퓨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었다. '긱Geek'함은 21세기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옥빈의 긱한 모습들 - 클릭

사실 DSLR이 어렵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가만 보면 가장 중요한 전원과 셔터버튼이 상투적인 자리에 큼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전원을 켜고, 셔터버튼을 누르면 된다. 이보다 단순할 수 있을까? 오히려 콤팩트 카메라는 그 종잡을 수 없는 다양성으로 인해 초기 사용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DSLR이 어렵게 보이지만 실제로 쉬운 반면, 실제로는 어렵지만 쉬워 보이게 하는 영악함을 콤팩트 카메라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DSLR이 실제로 어려웠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DSLR은 복잡해 보이는 조작법을 통해 기술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실제로는 쉬운 사용성으로 소비자들을 좌절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DSLR은 영악하다.

앞서 시대정신을 언급한 것은 가치가 돌고 돈다는 것과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이 훌쩍 넘어선 지금쯤 인간이 쿠킹포일을 두르고 살 것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어느 시절의 패션에 약간의 창의력을 가미한 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미래는 복고풍인 것이다. 만약 아날로그 카메라가 없었다면? 또는 콤팩트 카메라가 없었다면? DSLR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예쁘다, 화려하다. 이러한 것은 지고의 정답일 수 없다. 단지 한 세대에 지배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애플의 이쁨에, 구글의 촌스러움에 우왕좌왕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가치를 명확히 하고, 이 가치를 선명히 할 수 있는 수단을 흔들림없이 집행해 왔던 기업들이다. DSLR도 그렇다. 콤팩트 카메라가 질주하고 있는 동안에도 DSLR은 카메라의 본질에 치열하게 도전해왔다. 아마 언젠가는 콤팩트 카메라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단지 무대가 바뀌면서, 주인공도 바뀌었을 뿐이다.
2007/07/1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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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RUKXER.net 2008/11/16 14:13 x
제목 : [DSLR] 첫 DSLR, 즐길 수 있는 기기들
다음 메인에 연재 첫 글이 올라가는 이변을 경험하고나서 이 연재를 아주 후덜덜하게 긴장된 마음으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완전 떨리네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DSLR에 대한 여러 복잡한 이야기?
네오즈 2007/10/11 00:26 L R X
대중이 DSLR을 원하는 이유는 뽀대와 자랑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DSLR은 매우 어려운 존재이고요.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의 상관관계를 알아야 하고 화각의 개념도 깨우쳐야 하지요. 물론 컴팩트카메라가 쉽지는 않지만 모양새만 봐도 쉬워 보이지 않을까요? ^^;

DSLR을 오래도록 사용한 유저들 중 일부는 컴팩트로의 귀환을 하고 있죠.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egoing 2007/10/11 00:31 L X
귀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동의 합니다. 그런 이유로 대중들은 DSLR을 선택하고 있겠죠.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쉬운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DSLR의 열기를 계속이어가게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2008/09/17 00:01 L R X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있었는데..

잘 배우고 갑니다.
egoing 2008/11/15 21:45 L X
감사합니다. 답글이 늦었내요. ^^
Rukxer 2008/11/16 14:13 L R X
역시 굉장합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트랙백 해주셔서 발견하고 바로 달려 왔습니다.

제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말들을 다 해주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egoing 2008/11/16 16:14 L X
ㅎㅎ 이거 쫌 오래전에 쓴 글인데, 지금보니까 너무 장황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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