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굴욕
문자의 굴욕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문자 앞에서는 그의 생각을 쉽게 포기한다. 그것은 문자가 퍼스널리티를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도통 싸울 맘이 안나기 때문이다. 말은 사람이 하지만, 문자는 종이가 하므로.....

또, 독서란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 사이의 은밀한 대화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철저히 보장된다. 문자와 문자를 읽는 사람 사이에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자신의 생각을 슬그머니 철회하면 그만이다. 그런 점에서 배후에 군중의 시선을 전제하는 TV토론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상호 설득을 통한 합의의 도출을 기대하는 것은 살짝 미친 짓이다.

사실은, 문자 역시 퍼스널리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주로 학창시절에 형성된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교과서'이다. 우리는 예외없이 교과서를 통해 문자를 처음 만났다. 도대체 교과서의 권위에 누가 도전 할 수 있겠는가?

한편, 최근 10년에 걸처 다른 흐름이 감지 되고 있다. 문자의 피부가 요지부동의 종이에서, 전기적 신호로 급조된 모니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은 생물의 조건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읽기전용(Read-only)과 쓰기가능(Writable)이므로.

더구나 인터넷은 쌍방향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소통은 문자의 생명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이제 문자는 시퍼렇게 살아있다. 수천년 간 문자의 피지배민으로 억눌려 살았던 독자들은 댓글로 앙갚음을 한다. 이들이 저주하고 있는 것은 문자의 기득권이리라. 이 억압의 피해자들은 신경증적 악플도착을 해소할 대상을 찾아 떠돌고 있다. 네이버에서 정치코너의 댓글을 차단한 이 시각 그들은 어디매를 방황하고 있을까? 그들은 문명의 그늘이다.

무엇보다, 디지털은 매체를 만만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기사와 병렬로 배치된 댓글은 선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한페이지 안에서 똑같은 가독성을 가지고 군중의 시선 앞에 선다. 트랙백은 포스트라는 동등한 계급을 갖기 때문에 더욱 진보된 장치라고 할만하다.

문자의 권위?
다 지난 일이다. 2007/10/04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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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Lead 2007/10/05 11:50 L R X
egoing님의 포스트를 읽고나니 갑자기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란 책에 나오는 핫미디어, 쿨미디어가 생각이 납니다. 이용자의 참여도가 낮은 종이신문이란 핫미디어가 이용자의 참여도가 높은 인터넷신문이란 쿨미디어로 진화하면서 문자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기존의 기득권을 잃고 대중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되었다.. 멋진 포스팅입니다. ^^
egoing 2007/10/05 12:12 L X
"이용자의 참여도가 낮은 종이신문이란 핫미디어가 이용자의 참여도가 높은 인터넷신문이란 쿨미디어로 진화하면서 문자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기존의 기득권을 잃고 대중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되었다" 마샬 맥루한이란 분이 한 말인가요? 저도 그 책 한번 읽어봐야겠내요.

원래는 사람들이 왜 자기 고집을 꺽지 못하는가를 생각하다가, 삼천포로 빠져버렸는데. 좋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꼭 써봐야겠습니다.
Read&Lead 2007/10/05 13:12 L R X
아, 마샬맥루한이 한 말은 아니구요. egoing님의 포스트가 핫미디어/쿨미디어 컨셉과 맥이 잘 닿는 것 같아서 제가 걍 적어본 말입니다. (egoing님 생각을 그대로 적은 것에 불과합니다) egoing님 포스트를 읽으며 제 생각을 많이 다듬게 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egoing 2007/10/05 21:36 L X
감사하다니, 제가 더 감사하내요. 저도 Read&Lead님의 글을 통해 좋은 정보 많이 얻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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