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생각 | 2008/11/06 09:17
집에 CPU 달린 장비나 AV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장비를 일절 들이지 않는 것이 오래된 정책이었다. 컴퓨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럼 나는 그의 물음을 재구성해서 물어본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집에서도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면, 대체로 수긍한다. 문명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요즘 같은 세상에는 미덕이다.

그렇다 보니, 나는 여느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는 다른 생활 패턴을 갖게 되었다. 이른바 아침형 인간 말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근태의 상징이 되었다. 그랬던 나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8시 전의 출근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내가 출근 시간인 10시를 준수하기도 버거워진 것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선 노트북을 하나 질렀다. 좀 유비쿼터스 하게 블로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좀 핑계다. 나에게는 이미 블로깅을 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출중한 노트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좀 거대한 모니터를 함께 구입했다. 13인치의 작은 모니터에서 장시간 블로깅을 할 때 느껴지는 피로감 때문이었다. 또, 가끔씩 몰려오는 견딜 수 없는 적막감을 달래보고도 싶었다. 모니터는 TV튜너가 내장되어 있어서 TV로도 손색이 없었다.

우람한 근육질의 노트북, (제조사의 표현으로는)하이그로시한 모니터와 함께 있으려니, 생활은 자연스럽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최소한 2시 보통은 3시 심하게는 4시에 쓰러지듯 잠 속으로 미끄러질 때도 있었다. 노예가 되었고,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원래 의지라는 것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의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순간의 선택이 점점이 모여 있는 느슨한 선이다. 이 선을 빈틈없이 메우는 것은 다름 아닌 습관. 나는 습관을 신봉한다. 그럼, 습관은 무엇의 지배를 받는가? 환경이다. 아무리 완고한 습관도 결국 환경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노트북과 모니터라는 환경은 습관을 지배했고, 그 과정에서 의지는 무력했다.

노트북과 모니터를 살 때는 박약한 의지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의지는 그렇게 단단해 진다고도 생각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다. 나는 이것들을 지배하는데 실패했다. 오려 지배당하고 있다. 그제부터 노트북을 회사에 두고 집에 갔고, 어제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잠을 청했고, 새벽같이 일어나자마자 모니터를 박스에 봉인하기 시작했다.

그 모니터는 이제 회사에 있다. 앞으로 평일에 노트북과 모니터가 집에 있는 일은 가급적 없을 것이다. 당분감 금단현상이 나를 괴롭힐 것이다.
2008/11/06 09:17 2008/11/06 09:17

태그 : , , , , ,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egoing.net/trackback/855
Tracked from 8con's me2DAY 2008/11/09 01:43 x
제목 : 8con의 생각
아무리 완고한 습관도 결국 환경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 egoing : 실패
taeco79 2008/11/06 10:02 L R X
회사로 옮길 수 있는 결단력에 박수를....
개콘의 독한 넘들 버전으로는... 독해~!
같은 생각이 많지만.. 지배되어 사는 것이
하루에 낙이 되어버려... 벗어나고 싶지만...
마음만 굴뚝이 된지 오래라는... ㅠ.ㅠ
egoing 2008/11/06 10:07 L X
박수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ㅎㅎ
맥퓨처 2008/11/06 10:20 L R X
말씀하신 내용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는 애플코리아의 환율정책 덕분에 새로운 노트북을 구매하지 못한 관계로 그나마 조금은 단절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네요..
egoing 2008/11/06 10:39 L X
정말 다행이군요. 지름이 임박했군요. ^^
kkamagui 2008/11/06 12:53 L R X
대단하십니다. ^^;;;
저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을 하지만... 컴퓨터를 떠날 자신이 없어서 최대한 빨리 퇴근한답니다. 그리고는 집에서 최대한 일찍 취미생활을 시작하지요. 그러면 아무리 늦어도 2시에는 자더군요. ㅎㅎ
모니터를 회사로 옮길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
egoing 2008/11/06 19:01 L X
ㅎㅎ 회사에서 모니터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답니다. (실망하셨으려나요?)
daybreaker 2008/11/06 13:07 L R X
저야 회사도 안 다니고 잠시 휴학 중인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계속 집에 두고 살지만, 1시가 넘어가면 스스로 재촉해서 빨리 자려고 하는 편이죠.;; 근데 이게 가족들 생활리듬하고도 맞춰야 하다보니 경우에 따라 가족들이 다같이 늦게 자야 하는 일이 생기면 또 리듬이 깨지기도 하고..;; 아무튼 건전한 생활리듬을 유지하는 게 쉽지만은 않네요. ^^;
egoing 2008/11/06 19:03 L X
건전하다는 것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저는 저의 삶을 적절하게 로드발렌싱하는 것을 원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삶의 부합되는 것을 건전하다고 한다면 지금 이 시간 모니터와 노트북은 저에게 분명한 위협인 것 같내요.
소은 2008/11/06 13:13 L R X
푸하핫, 자신을 시험해 보고싶으셨던거군요..
egoing 2008/11/06 19:04 L X
라기보다 사고 싶었던거죠. ^^
jingjing 2008/11/06 20:21 L R X
음.. 저도 얼마부터 24인치 와이드 모니터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 생활패턴이 엉망이 되었어요;
그런데, 모니터를 가져다 놓을 회사가 없군요. 핫핫;
egoing 2008/11/07 02:58 L X
저는 심지어 거기에 2인치가 크내요 ㅎㅎ 징징님 보고 싶내요. ^^
ghost 2008/11/11 10:29 L R X
흠 지름신을 두둔하는 글이군요. ㅎㅎ 나쁜 것은 지름신 ㅎㅎ
egoing@gmail.com 2008/11/11 11:56 L X
아냐. 지름신은 다른 차원에서 언급된 고약한 놈일뿐. 이건 분명히 의지와 습관 그리고 환경의 복잡한 속사정에 대한 글이야

아이디 :
비밀번호 :
홈페이지 :
  비밀글로 등록
내용 :
 


[PREV] [1] ... [35][36][37][38][39][40][41][42][43] ... [289] [NEXT]
삼성타워와 진상 (16)
버스 안에서 (8)
위로 (5)
민주주의의 숨은 공모자 (4)
matrix (12)
불안 (17)
랜드마크 (17)
사실과 인식 (2)
블로그와 올드미디어 (6)
이상한 진보 (7)
하이퍼텍스트 2 (7)
RSS와 망각 2 (14)
블로그 포장이사 그리고 TTXML (12)
아버지 (5)
인터넷과 웹 (4)
온라인신문협회와 포털 그리... (2)
하이퍼텍스트 1 (4)
어머니의 행성 :: 기로에 선... (20)
해체되는 블로그 (6)
어르신들의 웹서핑 (6)
바쁨 (8)
Just Do It의 반대말이 뭐죠? (20)
신기한 일 (14)
아이디어 - 모바일 (10)
인테리어하지 않은 인테리어 (10)
온라인을 지배하는 힘 (7)
플래닛이 문을 닫는다고? (82)
기획하지 않은 기획 (12)
세가지 세계 (10)
동시대적 상상력 (2)
악플러 (4)
직업병2 (6)
이상한 미덕 (3)
RSS와 망각 (13)
불안 (2)
테러리즘과 MT
노름과 MT (6)
생명 (2)
실패 (14)
과거 (4)
소통과 고독 (6)
기대 (2)
윤리 (8)
개발자 (8)
턱걸이 (8)
집착 (6)
(8)
공간 (10)
고시원 2 (22)
고시원
독서 (18)
천재 (4)
음식 (8)
직관과 논리 - 선수와 선생 (8)
온오프전쟁
브릿지 (4)
동선 (12)
다 지난 일들 (8)
M$가 볼모로 잡은 새벽 (10)
내가 모시는 스승 (2)
끄적끄적 (2)
노트북 (12)
감세 (2)
이게 사실일까? (18)
귤예찬 두번째 (6)
청소 (6)
성형과 계급 (4)
블평 (15)
명절 (6)
귤예찬 (28)
주당 (5)
사라져야 할 말 (2)
불안 (2)
올림픽과 취미 (16)
과학과 문학 (4)
아이디어 (20)
과학과 인간 (2)
과학과 종교 (13)
다르다와 틀리다, 같다와 맞다. (20)
멸종위기의 백인 (13)
싸이웓드의 성공과 실패 (7)
휴식 (4)
스타크래프트 (7)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6)
아 다르고, 어 다르다. (9)
베트맨과 아이맥스 (11)
역사 (4)
구글과 애플 (8)
자린고비 (4)
공권력과 촛불 (2)
정연주라는 트로이 목마 (12)
직관과 논리 - 키보드와 펜,... (10)
급체 (12)
박근혜가 조급한 이유 (4)
기상청 (10)
IT (7)
흉부외과 (10)
노무현과 이명박의 차이 (4)
유재석이 잘생겨진 이유. (6)
텍스트큐브.org가 해야 할 것 (16)
블로그는 어렵다? (14)
가장 위대한 반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6)
병원 (12)
보수는 무능해지지 않았다. (4)
서강대녀, 오세훈 주민소환,... (10)
MB식 이상한 커뮤니케이션 솔... (7)
정의? (4)
권력과 기상청 (4)
촛불이라는 프리즘 (4)
발명품 (2)
시간이라는 장사 (2)
성급함에 대한 고백 (2)
애플의 디자인 (12)
정권의 처지 - 임계점과 습관... (6)
광고라는 리트머스 (2)
정권의 새로운 호적수와 EBS... (4)
인디아나존스.말고 고고학자... (6)
스피드레이서.말고 다른 영화... (11)
그래 아직 업어드리지도 못했지 (10)
아이언맨 (16)
난독증인가? 난번역인가? (6)
미의식 (4)
흥행의 조건 (2)
웹서비스에서의 진보와 개혁 (3)
메이저와 마이너의 관계 (7)
아이러니 공화국 (6)
갈등의 수준 (2)
독도는 한국 땅, 티벳은 중국 땅
StandAlone complex (8)
사람은 죽어서 책을 남긴다.... (7)
오래된 시간(낡은 것들) (14)
레드홀릭 (10)
allblog in hanrss (22)
건빵주머니 속 자동차 (6)
정신나간 사람들 (4)
프래임 웍 (9)
글쓰기 (5)
비즈니스 모델 (6)
살처분 (6)
기억량보존의법칙 (2)
선거
동물원 (16)
you2day.net (2)
카운터 사기 (4)
우분투 (10)
지역화 (6)
web2.0 (8)
한나라당
이동통신사 (14)
BPF후 (14)
일정 (10)
습관 API (10)
소수자 (16)
빨래엔 피존 (6)
사랑의 증후 (53)
경험의 중요함 (12)
컴벳암즈 (10)
20:80 (13)
컨퍼런스 (3)
이념이 나쁜 이유. (8)
야동과 창의력 (22)
고흐전후 (18)
아이들의 애정표현 (16)
가라 (8)
나에게 네이버란? (3)
레고와 창의력 (40)
나도 전설이다 (6)
Big 3, 2007 (2)
냉장고 (8)
내가 장사를 한다면 이런 것... (18)
크리스마스 (23)
망각력 (6)
커튼이 벽지보다 좋은 이유 (8)
대선의 절경 (5)
Good bye my 2007 (26)
혐오량 보존의 법칙 (9)
어느 노빠의 정치적 커밍아웃 (9)
도쿄도지사후보 방송유세 (16)
신뢰 (8)
애정결핍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 (12)
오래된 미래 - 미래에는 어떤... (15)
한국정치의 양비론적 비극 (6)
소음 (29)
아침햇살 VS 신라면 (11)
반고흐전 (18)
동안이라는 말이 무척 유감스... (22)
러시아 이름에 대한 불만 (17)
베오울프가 남의 일 같지 않... (8)
공존 - (농담 반 진담 반) (8)
뇌에 대한 싱거운 음모론 (14)
죽은 시인의 사회 (27)
식객의 막전막후
일상을 지배하는 힘 (13)
네이버가 나쁜 이유 (23)
영적이라는 것과 종교 (14)
세상을 움직이는 힘 - 알바와 빠 (4)
서울 에어쇼 2007 - 밀리터리... (12)
친구 (4)
사람은 누구나 시대의 자식이다 (2)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부패와... (15)
세계 최초의 블로거 대통령 (8)
단순성과 자유도, 그리고 고... (21)
문자의 굴욕 (4)
울엄마의 절대음감 (8)
원더걸스의 막전막후 (13)
조카 전상서 (33)
친절한 ㅎ (4)
블로깅하다 (32)
대화의 기술 (1)
합리적인 소비를 위한 제언 (10)
Death Proof의 막전막후 (8)
포스팅하다 (20)
외유내강 (2)
계절의 관성 (16)
Followership (7)
석방을 축하드립니다 (40)
예비군은 악플러 (11)
이모티콘 얼굴로 고쳐주세요.... (18)
감정의 의외성 (6)
기형도를 추억하다 (18)
블로깅의 어려움. (32)
속독 (4)
그녀를 추억한다 (3)
바벨의 현대적 의미 (7)
사물과의 대화 (13)
대화하세요 (17)
심형래,황우석,노무현 그리고... (18)
노이즈 마켓팅의 막장 (12)
화려한 휴가 프롤로그 (8)
외계인은 친구일까? 적일까? (7)
화려한 휴가 (2)
신해철을 생각하다. (8)
삼성동 현대백화점 화장실의...
슈바이처와 마더 테레사에게... (2)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
고독과 종교
콤플렉스 (3)
심심하다! (2)
DSLR의 승천 (6)
제3회 태터캠프 열립니다.
행복과 불행 (1)
공각기동대 - 과학과 종교 (12)
오 하느님 - 조정래
공각기동대 - 난민과 반도 (18)
냉방의 양극화 - 바보 에어컨 (2)
트랜스포머 (3)
커뮤니케이션 과잉과 컨텐츠... (4)
직업병 (1)
시부야의 스파이더 맨 (6)
이터널 선샤인 - 냉정과 열정... (11)
신앙고민 (10)
감성은 힘들다 (6)
진보논쟁 링크 모음
웹진화론 (2)
책 더럽게 돌려보기 (19)
액션영화의 최고봉 학원 폭력물 (10)
자살 (4)
집착없이... (2)
철학자의 머리로 생각하고 시... (2)
고흐와 홈쇼핑 그리고 마라톤 (7)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4)
Van Gogh (2)
선영이 시집가는 날. (1)
진혁이가 아프다. (8)
조정래 선생님 아리랑 100쇄... (4)
꼴찌와 일등사이
주상관매도 - 김홍도 (6)
목계장터 - 신경림
종방을 앞둔 노무현 시즌2
동해나 일본해가 정당한가? (2)
고정관념 (1)
VMWARE에서 Linux 설치하기
ExternalInterface 오류
TransFormmatrix 의 이해
Really Simply Histroy(RSH)
회전변형을 이용한 3차원 원운동
전세계 경쟁력 지도 (2)
응용 프로그램을 위한 최상의...
원근공식
삼각함수
한심한 기자들
3D 회전공식
어도브 공식 플래쉬 삽입방법
오른쪽 두뇌로 그리는 그림 (4)
secureCRT
플래쉬의 새로운 기능 - bitm...
웹 2.0 = 웹 (성찰, 진보) (4)
표명렬장군
전체 (289)
독백(이기적인 언어) (25)
대화 (5)
생각 (155)
사진 (0)
사생활 (8)
반행동 (7)
정보와기술 (12)
태터툴즈 배너
rss
 
 
 
위치로그 : 태그 : 방명록 : 관리자
egoing’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com / Designed by plyfl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