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원하지 않는 학교에 과수석으로 입학한 나는 좀 기괴한 심리상태 속에서 일학년을 보냈다. 그것은 열등감과 우월감이 뒤죽박죽된 것이었는데, 물려받은 기질이 친절한지라 적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 친절함은 상대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구분되기를 원했고, 실제로 사람들은 나를 정중하게 대했다. 나의 친절함과 사람들의 정중함만큼 우리는 동떨어져 있었다. 나의 일학년은 다른 학교의 일학년들과는 좀 달랐는데, 입학한 학교는 몇년째 분규중이었고, 얼마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수업거부에 돌입했고, 학생회장의 결의에 따라서 자퇴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악다구니를 쓰며 구호를 외치고, 하늘에 시퍼런 멍이 생길 때까지 팔뚝질을 했다. 전경들과의 으쌰으쌰는 아무리해도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것까지도 익숙해지는 나를 목격하곤 했다. 익숙해짐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그날은 총장집에 방문투쟁을 하는 날이었다. 전교생이 참가한 총력투쟁이었고, 전경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집주인도 없는 곳을 갔다가 돌아왔다. 강당에 집결했고, 과별로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연설이 시작 되었다. 우리 과의 차례가 오자 학우들이 내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수천명이 내려다보이는 연단위에 서 있었다.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장 멋진 웅변을 마치고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학우들은 연단에서 내려오는 일학년을 향해 일제히 놀라운 시선을 보냈다. 아까전에 학우들이 연호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이름과는 한끗 차이 밖에 나지 않는 4학년 운동권 선배였다. 2010/02/20 1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