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이야기 섹스엔더시티가 좋다. 우리 어른들은 사석에서 얼마나 많이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는 이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언급하더라도 음란하게 한다. 만약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글레머러스 했다면 드라마는 삼류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일리언에 대한 영화인 콘텍트에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탁월했다. 외계인의 기괴한 외모에 집중했다면, 정작 중요한 본질인 인간의 마음은 뒷전이 됐을테니까. 마찬가지로 성이 삽입과 오르가즘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중요한 본질을 비껴갈 수 밖에 없다. 확실히 성은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그것은 성이 가장 은밀한 미디어이면서, 채널이고, 또한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이다. 성은 내밀하고 사적인 경험의 영역이지만, 엄연히 상대가 있는 소통이다. 언어의 핵심은 약속이다. 그 염격한 약속 위에서 우리는 소통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성도 마찬가지다. 성은 그 중심에 성욕을 두고,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과 그것을 해소시키는 '행위'로 이루어져있다. 이 중 대상과 행위는 사회적인 캠페인과 개인적인 체험으로 조율되는데, 사회적 합의가 없는 성욕은 욕설로 가득 찬 언어나,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처럼 폭력적이다. 이 폭력의 배후는 누구인가? 도착은 누가 만드는가? 음란함은 무엇이 결정하는가? 금기의 수위다. 금기는 사회적인 합의를 가로막는다. 우리 사회에 음란함이 넘처나고, 변태들이 들끓는 이유는 이런 위선 때문이 아닐까? 이제 우리 사회도 야하지만 야하지 않은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2009/07/07 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