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에 해당하는 글3 개
2007/08/26   감정의 의외성 (6)
2007/02/04   Van Gogh (2)
2007/01/30   진혁이가 아프다. (8)


감정의 의외성
감정의 의외성

#1

날씨는 덥고 훈련은 무료했다. 강당 입구에는 지루함을 견뎌보고자 예비군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태우고 있다.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나무그늘 아래에는 동대장들이 들으나 마나 한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대장:훈련 교관) 한 예비군이 동대장들의 일단을 향해 걸어간다.

"조퇴를 좀 해야겠습니다"

시간은 4시. 5시면 훈련이 끝날 터였다. 동대장 중 한 명이 갸우뚱하며 묻는다.

"한 시간 후면 훈련이 끝나는데 좀 기다리시지 그래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요"

예비군의 안면은 초점이 다소 흐려졌을 뿐, 어떠한 감정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순간 동대장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귀동냥으로 사정을 엿듣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사람의 뜻밖의 불행도 그랬지만, 어떠한 감정도 흘리지 않는 예비군의 모습은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분주하게 했다. 나는 도저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서둘러 강당으로 돌아왔다. 머리가 복잡하다. 예비군은 전파를 수신하지 못한 브라운관을 가득채운 수많은 실밥 한 가운데 검은색 불량화소처럼 요지부동의 자세로 서 있었다. 그는 곧 오열할 것이다.


#2

내일모레 군입대를 앞두고 고장 난 이빨을 수리하러 치과에 가는 길이다. 아버지와 나는 오히려 평소보다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매일 지나가던 익숙한 길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좋은 기분이다. 얼쿠! 과속방지턱을 미쳐보지 못했던 나에게 노면의 굴곡이 그대로 전달된다. 그 순간 왈 콱 눈물이 쏟아져버렸다. 나는 재빨리 눈물을 훔친다. 왜 이러지? 입대를 앞두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않던 나를 내심 든든하게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나 눈물은 끝내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발견할 때까지..... 아버지는 털털하게 웃어 보였지만, 우리는 치과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


내일 군입대를 앞두고 나는 가까운 친지에게 전화로 인사를 한다. "저 내일 군대 가요" 똑같은 맨트와 똑같은 반응이 막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여보세요"

저쪽에서 이모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모 잘 계셨죠? 저 태경인데요. 저 내일 군대가요"

나의 목소리는 권태롭게 느껴질 정도로 차분했다.

"어 태경아. 군대 간다고?"

왈 콱 전혀 예지하지 못했던 울림이 목젓에서부터 느껴지면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불과 1초가되지 않는 사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전화통을 붙잡고 있었다.

"ㅇ..."

더는 말을 잊지 못했다. 목이 매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이모.
나에게 서수를 붙이지 않은 이모는 셋째 이모를 의미한다. 88년 전까지 이모부는 청주에서 손꼽히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모부의 회사에서 총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철제를 가공하던 이모부는 전자업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당시 어렸던 나는 공장에서 부지런히 납땜을 하던 누나들의 손놀림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윤가라는 사기꾼과 상공회의소의 고위인사가 개입하면서 급기야 부도를 맞게 되었다. 이모부의 전 재산은 증발했고, 얼마 후 이모부도 세상에 안 계셨다. 파국은 우리 가족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전 재산을 담보로 내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칡 흙같은 어둠을 틈타 대전 큰 이모 댁으로 야간도주라는 것을 했다. 누나와 나는 맡겨졌고, 아버지는 유치장이라는 곳을 다녀왔고, 엄마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와 엄마가 이모부를 원망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당신들은 혼자가 된 이모를 언제나 걱정했다. 이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고3이었던 이모의 아들인 사촌형은 삭발을 했다. 전교일이 등을 다투던 형의 친구는 서울대 법대를 차석으로 들어갔지만, 형은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이모부를 대신해서 형의 입학식과 졸업식에 참석했다. 형은 처음부터 나의 정신적인 맨토였고, 내가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비좁은 옥탑방의 한구석을 흔쾌히 내어주었다. 이제는 그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그 당시의 아픔은 어렸던 나에게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서로 의지하면서 시련을 함께 극복한 이모는 단순히 '친척'이라는 어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애뜻하고, 가엽고, 감사하고 와 같은 복잡한 수사로도 잘 설명이되지 않는 무엇이다.

"태경아 잘 갔다와"

".ㅇ..ㅕ.ㅣ..."


나는 바보같이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2007/08/26 23:02

태그 : , , , , , , , ,
RSS | 한RSS | 구글리더
트랙백 :: http://egoing.net/trackback/433
leezche 2007/08/27 00:39 L R X
누구에게나 시시콜콜 말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사정을 겪고, 치유하고, 다시 원래의 생활을 찾아가고... 그러는거 같아요.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지금이니까 다시 곱씹어 볼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egoing 2007/08/27 09:33 L X
맞아요. 그리고 저런 가혹한 과정을 통해서 가족들은 휠씬 견고해졌구요. 제가 진혁이를 이뻐하는 것도, 누나랑 같이 고생한 경험이나, 가족의 소중함 이런 것들의 결과이구요.
time0808 2007/08/28 00:03 L R X
태경님 얼~~라를 나~~아보삼 더 이쁘지롱~~~!!ㅋㅋ 안녕 주무세요 (예의 바르게) 꾸벅
egoing 2007/08/28 00:41 L X
예 타임님도 안녕히 주무세요. ^^
xizhu 2007/08/28 10:46 L R X
마음이 번쩍 뜨이는 글, 잘 읽고 갑니다
egoing 2007/08/28 13:54 L X
감사합니다 :)
아이디 :
비밀번호 :
홈페이지 :
  비밀글로 등록
내용 :
 


Van Gogh
Van Gogh

미술관에 다녀올 생각이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를 보기 위해서이다. 아쉬운 것은 제목과 달리 고흐의 그림은 3점 밖에 없다는 것. 단 한점의 그림이 있어도 고흐의 것이라면 다녀올 만 하겠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처음엔 그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명화라는 명성에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김광석의 노래가 좋아지면서, 산나물의 깊은 맛을 좋아하게 되면서 고흐의 그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느껴지는 것이었다.

고흐는 불같이 살다간 사람이다. 생을 마감했을 때 그의 나이 고작 38. 짧은 인생에서 그림을 시작한 것은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 10년동안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을 들락거렸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흐는 우리와 다른 단지 광인일까? 그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 었다. 세상의 부조리, 보잘 것없는 처지, 사랑하는 여인.... 이런 복잡한 문제들이 그를 둘러싸고 신경을 비틀었을 것이다. 그 고통이 심할 수록 그림을 그렸고, 그림은 저항의 수단이요. 도피할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외면했지만 분명 내안에 존재하는 시퍼렇게 날선 감정들이 뛰쳐나온다. 이 것은 기분 나쁜 경험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화되지 않는다면 이 것들이 서서히 나를 파괴할 것이다. 암세포처럼. 고흐는 나를 대신히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사춘기 때 절망의 끝까지 나를 몰아세우던 시인 기형도가 생각난다. 누군가 절망의 끝에서야 진정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기형도로 인해 촉발되었던 절망은 나를 지배했지만 동시에 희망을 보여주었다. 나의 긍정은 절망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춘기 시절 기형도가 지배했던 오래된 감수성을 고흐를 통해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림만이 아니다. 동생 태오와의 형재애 때문이다. 태오는 고흐의 경재적, 정신적 후견인이었다. 고흐가 엽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후 태오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형의 뒤를 따라간다. 고흐와 태오의 형재애를 기념하기 위해서 동상이 제작되었는데 하나의 몸에 두개의 머리를 하고 있는 흉상이다. 짐작하듯이 하나는 고흐이고 다른 하나는 태오다.

이 동상을 구글에서 찾아봤다. 검색어는 gogh teho. 그런데 고흐에 대한 이미지는 없고 불량하게 생긴 금발머리 사진만 검색되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teho van gogh. 이 친구 때문에 고흐가 검색이 안된다. 호기심에 그의 이력을 살펴봤다. 그는 영화감독이고 이슬람 여성을 비하했다가 이슬람청년에 의해 살해 당한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친구가 고흐의 증손자라는 것. 고흐가 젊은 날 밤에 일하는 여성과 잠깐 관계를 맺었는데 이 때 둘 사이에 생긴 아이가 이 친구의 할아버지인 샘이다. 그의 이름이 teho van gogh이고, 그의 비극적 최후는 고흐의 그것과 꼭 닮아 있지 않은가?

고흐를 지탱해준 것은 5할이 그림이고 5할이 가족이었던 것이다.

2007/02/04 11:30

태그 : , , , , ,
RSS | 한RSS | 구글리더
트랙백 :: http://egoing.net/trackback/305
Tracked from 민노씨.네 2007/08/14 17:56 x
제목 : 79. 기형도와 나
1. 내가 처음 읽은 기형도는 권택영이 읽은 기형도였다. 어떤 잡지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외국 문학]이었던 것 같은데.. . 권택영은 '죽음이 살다 간 자리'라는 짧은 시평을 썼..
민노씨 2007/08/14 17:53 L R X
고흐에 관한 글이지만, 기형도가 반가워서요.
트랙백 보냅니다. : )
egoing 2007/08/15 09:28 L X
기형도.

고등학교 때 교생으로 온
학교선배가 선물한 두권의 시집 중 하나였습니다.
하나는 류시화의 "나는 내가 옆에 있어도 그립다."
다른 하나는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이었죠.
선배가 저에게 기형도 시를 주면서 주의사항을 당부했습니다.
이 시는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고.
그렇게 저의 중세도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는 병아리를 통해 죽음을 경험했다고 하던데,
저에게는 기형도 였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이어서 그렇고,
그의 시속에 흩어져 있는 암시들이
한결같이 죽음의 이미지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저의 사전 속에 살아있습니다.
그로테스크라는 번지 수를 가지고요.
김현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으로 그를 표현했습니다만
저의 사전에서 리얼리즘은
수 많은 죽은자들과 살아있는 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공재 입니다.
그러나 그로테스크는 기형도 혼자서
탐욕스럽게 독점하고 있는 사유재 입니다.
물론 저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만,
그의 탐욕이 너무나 강하고,
그의 욕망이 너무나 견고한 나머지
사유화를 인정당한 샘입니다.

그래서 그로태스크 현실주의는
저에게는 기형도와 리얼리즘이라는 말로 동치될 수 있습니다.

기형도라는 이름만으로도
잊혀졌던 감정들이 뛰쳐나와서
얼싸안고 반갑게 인사하고 있군요.
민노님과 저는 어정쩡하게
그들의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구요.

행복
그 것은 꼭 즐거운 감정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적이 닿지 않는 곳의 고독이
쾌락을 보내 우리를 기만하는 것처럼요.
저와 같이 소박한 '정상인'은
드리워진 그림자 너머에 칠흙같은 어둠을 보며
저기에 머가 있을까?하는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만
고흐나 기형도는
우리를 대신해 그 곳을 탐색하고 있군요.

트랙백과 댓글 감사합니다.
아이디 :
비밀번호 :
홈페이지 :
  비밀글로 등록
내용 :
 


진혁이가 아프다.
진혁이가 아프다.

이번 주말에 청주에 다녀왔다. 진혁이와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녀석이 장염이란다. 한번 시작하면 1리터씩 토하고, 설사하는데 녀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싱글벙글이다. 마치 과장되지 않고 덤덤하지만 슬픈 이야기로 가득찬 영화 한편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맘이 아프다. 대신 아파줄 수 없을까?

외삼촌 간다고 하니까 고사리같은 손으로 소매를 꼭 잡고 놓지를 않는다. 이 기분 여러분은 모를 것이다. ㅋㅋ 어떤 이는 네가 총각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래의 사진을 보라. 이 천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매마른 인간이 아닐까?  나는 정체성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걸 개인화된 예술이라 하지

2007/01/30 09:23

태그 : , , , ,
RSS | 한RSS | 구글리더
트랙백 :: http://egoing.net/trackback/293
CK 2007/01/30 19:53 L R X
눈 진짜 부리부리~!
egoing 2007/01/31 08:07 L X
Fall in eye ~
lunamoth 2007/01/31 01:27 L R X
아 첫번째 사진 정말.. ;)
egoing 2007/01/31 08:08 L X
기분이 좋아지는 제 조카사진은 퍼가셔도 좋습니다 :)
Chester 2007/02/01 01:29 L R X
아가 너무 이쁘네.. 태경씨네 집 gene 이 좋은거 가텅 ㅋㅋ 언넝 본인이 직접 이런거 만들어 보시길 ^^
egoing 2007/02/01 08:07 L X
그렇지 않아도 요즘 백방으로 달리고 있는 중.

물론 일도 열심히 ~ ㅋ
맥퓨처 2007/02/02 12:05 L R X
진혁이 얼굴은 울 와이프에게도 인정을 받았답니다.. ㅎㅎ
김태경 2007/02/02 13:54 L X
감사합니다. 희주 역시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나중에 우리 조카랑 희주가 만날 날이 올까요? :)
아이디 :
비밀번호 :
홈페이지 :
  비밀글로 등록
내용 :
 


[PREV] [1] [NEXT]
RSS | 방명록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