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모든 건물의 꿈은 자기 동네의 랜드마크가 되는 것일께다. 직장이 있는 강남역에는 으리으리한 빌딩들이 즐비한데, 모두가 랜드마크가 될 꿈으로 부풀어 있다. 그렇다 보니, 게 중에는 이름 자체가 랜드마크인 경우도 있다. 마치 식당이름으로, 소문난,유명한을 붙이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건물은 랜드마크가 될 수 없었다. 저 유명한 뱅뱅사거리 옆에 있었거든.
역삼역에는 스타타워가 있었다. 한때, 국내 최고의 건물이라는 프리미엄과, 유치하면서도, 간결한 지붕 위의 별, 강남권 전역에서 바라보이는 엄청난 기럭지 덕분에 랜드마크의 모범사례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천하는 오래가지 않았다. 싱가포르 투자청에 매각되면서 스타타워는 파이낸스 센터로 바꼇고, 건물 꼭대기에서 번뜩이던 별까지 떨어지면서, 이 건물은 왕년의 랜드마크로 전락했다. 바보들.
아무리 해도 안되는 경우도 있다. 강남역 2번 출구에는 메리츠 타워가 있다. 이 건물은 모호한 형태의 기하학적 지붕이 인상적인데, 그 어마어마한 풍채만큼이나, 랜드마크로써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제아무리 메리 메리츠라 해도, 손바닥만한 강남역 2번 출구를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지하철 역과의 가까운 거리는 접근성에선 중요한 장점이지만, 이것은 랜드마크가 되려는 야망과 충돌한다. 지하철역은 가장 강력하게 시스템화된 랜드마크이기 때문이다. 누가 강남역 2번출구를 두고, 메리츠 타워 앞에서 만나자고 하겠는가?
지하철 6번 출구에는 뉴욕제과와 지오다노가 있다. 이들은 지하철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랜드마크가 된 것은 6번 출구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강남역을 중심으로 양재방향은 일하는 곳이고, 강북방향은 노는 곳이다. 6번출구는 노는 곳의 입구인데, 그렇다보니 인구유동성이 엄청나고,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이곳은 언제나 사람이 넘쳐난다. 해서, 지리를 아는 사람들끼리는 굳이 6번출구에서 만나자고 할 필요 없이, 뉴욕제과나 지오다노에서 만나자고 하면 되는 것이다. 특히, 지오다노는 넓은 매장과 개방형 구조 덕분에 적당히 시간 때울 거리를 제공한다.
랜드마크란 단순히 마케팅적인 수완으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과 그 공간을 둘러싼 환경, 그리고 거기서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기럭지를 늘리고, 삐까뻔쩍하게 미장하고, 보도블록만 간지나게 포장할 것이 아니라, 1층 로비 정도는 공공에게 제공하겠다는 각오 쯤은 해야 한다. 시큐리티가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기라성 같은 건물에 똥이라도 맘편하게 눌 수 있겠는가?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추위가 매서우면 따뜻한 바람이라도 불어주고, 화장실이 급할 땐 언제든지 들어오시라고 한마디 써 붙이는 마음 씀씀이가 있다면, 그곳은 이미 랜드마크다.
2008/12/16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