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 2몇일 전에 말장난에 대한 고백조의 글을 하나 썼다. 최근에 "숫자에 약한 사람들을 위한 우아한 생존 매뉴얼"이라는 책을 샀다.(봤다가 아니다) 그중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수를 좋아하는 사람의 취미에 대한 언급이었는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수에서 어떤 규칙을 찾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살짝 스포일러) 영화 노잉에서는 MIT교수가 난잡하게 기록된 숫자 속에서 911을 찾아내고, 그 뒤에 따라오는 숫자가 희생자의 숫자임을 알아낸다. 결국, 이 난잡한 숫자들의 조합이 미래를 암시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인류의 마지막 재앙을 막으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여기까지 스포일러) 참 멋지지 않은가?
이것과 비슷한 동기에 해당하는 오락이 있는데, 바로 말장난이다. 말장난이란 같은 소리면서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를 매개로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내는 언어적 유희다. 이것의 핵심은 문맥의 의외성이다. 언어는 숫자보다 훨씬 오래된 논리적 도구이다. 그렇다 보니, 언어는 기본적으로 논리적이다. 그런데 말장난이 끼어들면 예상하지 못했던 문맥이 불쑥 나타나면서 논리적 완결성이 한방에 와해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리치하에 있던 무의식이 기지개를 켜면서 뛰쳐나온다.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새로운 관점의 생각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것은 세계를 구하지는 못하지만, 생활을 구한다. 동시에 말장난의 주인공에게는 가벼운 핀잔이 융단폭격으로 돌아온다. (그 총량은 무겁다) 숫자 좋아하는 사람은 MIT교수가 돼서 세계를 구하겠다고 나대는데, 나 같은 사람은 사무실에서 개 무시를 당한다. 이거이 좀 불공평하다. 그래서 말장난은 캐주얼한 순교다. 그걸 몰라주니 더욱 그렇다. 나도 이 글 쓰기 직전까진 몰랐다. ㅎ
PS. 이 글에서 말장난의 주옥같은 사례를 풍부하게 소개하려고 했다. 그런데 말장난이라는 것이 지극히 무의식적인 거라 그 사례를 의식적으로 만들어보려고 하니 영 신통치 않다. 또 이것이 사고를 거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걍 팅겨나가는 일종의 반사작용이다 보니 차분하게 저장된 기억도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검색이 안 되는 건지, 저장이 안된건지... 심심한 글이 된 것 같아서 탐탁지 않아 하는 중.
말장난나는 말장난을 참 좋아한다. 비슷한 소리를 가지고 전혀 다른 의미로 문맥을 틀어버리는 수작 말이다. 요즘 개콘을 재미나게 보고 있는데 그 중에 '씁쓸하구만'이 참 웃기다. 그 중에 유상무라는 개그맨이 나오는데, 그의 직책이 상무다. 그의 보스는 그를 유상무(여기까지가 이름)상무(여기까지가 직책)상(여기까지 일본어로 존대)이라고 부른다. 말로 웃기는 거라서 말로 설명하면 입도 아프고, 귀도 아프니까 다음 동영상을 보자.
나도 이것과 비슷한 컨셉의 말장난을 개발한 것이 있다. "고소영이 고소해서 고소하다" 고소영씨가 네티즌들을 전방위로 고소할 때 적의 일이다. 그런데 이걸 개그 소재로 만 쓸게 아니라, 한국어 능력평가에 활용하면 어떨까? 이렇게
1. 유상무상무상이 상무부대에서 상을 받았다의 뜻을 풀어 쓰시오. 2. 고소영이 고소해서 고소하다의 뜻을 풀어 쓰시오.
내가 처음부터 이런 실없는 개그를 한 것은 아니다. 그 기원은 유저스토리 랩의 정사장이다(그가 이 회사의 CEO이긴 하지만, 그가 정사장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전형적인 풍채 때문이다) 한 때 직장동료였던 정사장이 오마이뉴스에 다니다가 우리 회사로 왔는데, 말장난이라는 이상한 습관을 같이 가지고 왔다. 그런데 이 말장난이라는 것이 참 오묘한 전염성이 있다. 나도 모르게 그 짓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새로운 개그코드로써 나의 개그 코드의 스팩트럼 중의 하나로써 다양성에 기여하는 선에서 끝났다면 상관없다. 문제는 말장난이 이전까지의 개그 센스를 말살시켰다데에 있다. 정사장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면의 심연에서 올라오는 심오한 개그를 구사했었더랬다. 그것은 씹을 수록 깊은 맛이 우러났다. 그런데 말장난은 이런 주옥같은 감각을 살처분해버렸다.
내가 말장난에 대해서 이렇게 민감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선 말장난은 사고를 거치지 않는다. 웃음의 일반적인 사고과정을 단순화시키면 이렇다.
입력 -> 언어회로 -> 사고회로 -> 언오회로 -> 출력
그런데 이 빌어먹을 말장난에 감염되면 이렇게 된다.
입력 -> 언어회로 -> 출력
말장난은 사고회로를 거칠 필요도 없고 언어회로를 중복해서 사용하지도 않는다. 이런 것을 이 바닥에서는 코스트가 낮다고 하고, 이런 짓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상업적이라고 부른다. 나는 본의 아니게 상업적인 인간이 된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종류의 개그에 사람들이 일단은 반응을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 웃음이 진심에서 우러나는 '박장대소'가 아니라, 비웃음에 가까운 '피식'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반사적이고, 습관적인지라 엔돌핀과는 무관하다. 심연의 울림이 아니라, 얼굴 근육에서 일어나는 전기적인 반응에서 엔돌핀을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원래 건강한 개그는 아래와 같은 프로세스를 거쳐서 웃음을 유발한다.
입력 -> 언외회로 -> 사고회로 -> 언어회로 -> 출력
그런데 이 빌어먹을 말장난은 아래와 프로세스가 아래와 같다.
입력 -> 언어회로 -> 출력
결국 말장난을 하는 쪽이나, 그것에 반응하는 쪽이나, 동일한 프로세스를 겪게 된다. 이 거저먹는 웃음코드를 누가 쉽게 비껴갈 수 있겠는가? 이러니 말장난의 유혹은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말장난이라는 유령. 도망 갈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기로 했다. 말장난 forever! (멍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