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 과학과 종교 관련글 : 공각기동대 난민과 반도
egoing이 전번 글에서 매우 흥분했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에니메이션을 묻는다면 여전히 '공각기동대'이다. 공각기동대는 역사의식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댕강 폄화화하기에는 말도 많고, 생각도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작품으로써 평가받아야 할 이유도 있는 것이니까. 반도와 난민에 대한 격정은 전번 글로 갈음하는 것이 좋겠다.
'자신이 자신인 것은 기억 때문이다.' 오리지널 공각기동대에서 비스듬히 벽에 기댄 소령이 한 말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 대한 기억의 결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서 잊혀진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소우주에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가 관계하고 있던 세계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숱한 영화들이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러한 종류의 죽음을 재탕하고 있다. 우연한 사건으로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 주인공의 기억 찾기 위한 온갖 노력. 이것은 육체적인 죽음과 그 죽음 극복하려는 우리의 태도와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기억을 되찾는 것은 곧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근 미래의 부르주아 인간들은 자신을 전뇌화한다. 전뇌화는 네트에 인간의 정신을 연결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데이터화 될 수 있고, 복제될 수 있으며, 저장될 수 있게 된다. 기억을 하드디스크에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인간은 네트를 통해 육체를 옮겨다니며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나를 똑같이 카피한 내가 옆에 서 있다. 그럼 그것이 나일까? 타인에게 그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 타인과 타인의 관계에서 그 시작은 육체이고, 그 실체는 기억이니까. 육체와 기억을 모두 가진 카피가 존재한다면 타인에게 그 것은 나의 부활이거나, 또 다른 나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도 카피본이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바로 이 미스테리한 지점에서 고스트(Ghost)가 드러난다. 나의 시선과 그 시선이 연결된 자아는 육체를 빠져나가지 않는다. 고로 하드디스크로 엑스카피 할 수도 없다. 공각기동대의 세계에서 인간은 타인에 대해서는 부활할 수 있는 존재이다. 육체는 안드로이드로 세우고, 정신은 백업 된 기억으로 리커버리하면 되니까. 하지만 진정한 부활, 즉 고스트까지 복구된 부활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물론 이 영화는 반쪽 부활에 만족하지 못한다. 계속되는 시리즈를 통해 고스트의 실체를 탐구한다. 고스트에 대한 탐구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며, 영원히 살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이것은 고대에서부터 계속된 영적인 탐구와 다름 아니다. 이 영화는 종교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신흥종교의 이름은 '과학'이다.
오늘날에도 전통종교는 영적인 활동의 주체이다. 문제는 전통종교가 신흥종교인 과학에 비해 영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역활이 바뀐 것 같기도 하다. 대형교회와 사찰들은 기업화가 되어가고 있고, 과학자들은 종교적 카리스마로 영생을 약속한다.
생명공학은 줄기세포를, 기계공학은 로봇을 앞세워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무서운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 영원히 살고자 하는 소망과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등에 업고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곧 공각기동대의 상상력에 도달할 기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랑 없는 믿음과 소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핵전쟁과 난민, 빅브라더의 감시, 해킹에 대한 불안. 과학은 과학이어야 한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종교야 말로 양의 탈을 쓴 거짓 선교사이며, 이단이다.
그러나 정작 사랑을 실천해야 할 종교는 어디에 있는가? 손쉽게 회개하고, 손쉽게 용서 받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다시 죄를 저지른다. 이 용서와 회개의 상습적 반복으로 죄의식은 점점 희미해진다. 이번 주 일요일에 다시 회개하면 되니까.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 참으로 뛰어난 유저빌리티(usability) 아닌가? 헌금과 출석률이라는 성과지표로 구원을 소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목소리를 사탄과 이단이라는 고약한 주홍글씨로 몰아세우는 오늘의 종교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 걸까? 같은 교인들간의 친절함으로 폄하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권위주의, 관료주의, 편의주의, 성장제일주의라는 우상을 섬기는 다신교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2007/07/09 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