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미디어와 핫미디어 핫이슈와 쿨이슈의 핫과 쿨이 다르다. 쿨이 좋고 싫은 것으로 인한 취향의 문제라면 핫은 취향과는 무관하게 얼마나 주목을 받는가에 따른 관심의 문제다. (마셜맥루한은 어려워서 잘 모르겠고, 내 맘대로 정의한 것에 따르면) 미디어도 핫미디어와 쿨미디어가 있다. 쿨미디어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을 전달하는 채널이고, 핫미디어는 집단적인 관심사를 전달하는 채널이다. 즉 '선호도'와 '관심도'에 따른 구분법이라는 말인데, 선호도를 중시하는 쿨미디어는 취향을 중시하며 '개인화'를 지향하는 반면, 핫미디어는 집단적인 관심의 반영과 확산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집단화'를 지향한다. 오늘날 대표적인 쿨미디어는 인터넷이고, 핫미디어는 방송이다. 인터넷은 취향에 따라 원하는 정보를 끌어올 수 있는 개인적 미디어라는 점에서 쿨하고, 방송은 편성표에 따라 실시간으로 정보를 밀어주는 집단적 미디어라는 점에서 핫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방송과 같은 핫미디어는 그것의 논조가 친정부건, 반정부건 흩어져있는 자연인들이 스스로를 국가라는 집단의 일원인 국민으로 자각 하는데 복무해왔다. 그것은 미디어들이 국가적인 사안을 기사로 내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연애나 가쉽 또는 사건사고와 같이 '사소한 것'을 '거대규모'의 대중에게 똑같이 전달함으로써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거대집단 즉 국민을 만든 것이다. 다시말해, 서울에 사는 김씨는 제주도에 사는 박씨도 무한도전을 봤을꺼라고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정부적 성격을 띤 미디어는 반정권적일 뿐 필연적으로 친국가적일 수밖에 없다. 반정부와 친정부가 만들어내는 갈등이야말로 그 어떤 애국심에의 호소보다 성원들을 국가적으로 만든다. 반대로 그 전파 범위가 국민적이지 않은 미디어는 그것의 논조가 어떤 것이건 국민적 일체감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반국가적이다.
그런데 이 견고한 '우리'의 메커니즘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한가운데 쿨미디어인 인터넷이 있다. 인터넷엔 방송의 채널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도메인이 존재한다. 심지어 방송 조차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시절이니까 말 다 한 거다. 이것은 공통분모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암시한다. 다시말해,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무한도전이나 개그콘서트 이야기를 꺼내기가 점점 주저주저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왜 그럴까? 도메인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채널을 찾아 나서게 되어 있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면 근대이후, 핫 미디어가 어렵게 구축한 전대미문의 견고한 집단인 '국민'의 응집력은 필연적으로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쿨미디어에 의해 파티셔닝된 취향이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오타쿠. (이런식의 정의에는 나 자신도 이견이 있지만) 한분야에 심취해서 사회생활과는 담쌓고 지내는 이들을 폄하하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한다. 오타쿠 문화에 관심이 많은 지인은 오타쿠의 배경으로 사무라이 사회를 지목한다. 일본에서 괜찮습니까?를 의미하는 다이조브 데스까?는 우리말로 '대장부 입니까?'다. 또 우리가 배반할 때 '등을 돌리다'지만, 일본말로는 '등을 벤다'. 일본인들의 정중함 뒤에는 타인에 대한 공포가 서려있고, 이것이 그들만의 개인주의와 오타쿠를 만들었다는 견해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오타쿠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일본과 다르게 오지랍이 과하게 넓어서 명절만 되면 '결혼 안하냐?', '학교는 어디 갔냐?', '직장은 어디냐?' 따위의 질문으로 신경을 후벼파는 우리 사회에서 '오타쿠'로 규정되는 개인들이 대규모로 출현하고 있는 것은 좀 의외의 현상이다. 오타쿠라는 말 속에는 사회적인 부적응자라는 말이 함의되어 있는데, 사회안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유일한 구분이 머리 수라는 점에서 오타쿠는 사회가 위협을 느낄 정도의 대규모 소수자가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배후에 핫미디어의 몰락과 쿨미디어의 부상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쿨미디어인 인터넷에는 핫미디어와는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한 정보가 있는데, 이 다양한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서 취향이 극명하게 갈리게 되는 것이다.
폐인. 원래 DCinside에서 상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것은 자조적일지언정 해학적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취향이 심화되면서 이 말 속에는 적대적인 비난이 함의되기 시작했다. 폐인으로 지목되는 대표적인 집단이 게임일 것이다. 게임은 탈국가적 현상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일어나는 분야다. 게이머들은 국가의 최고규율인 헌법보다, 업체의 약관에 더 민감하다. 그 안에는 경제도 있고, 계급도 존재하며, 범죄도 있다. 납세의 의무도 있어서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계정이 박탈된다. 게임 안에서 계정박탈은 사형에 준하는 극형이라는 점에서 그 지엄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의 일반적인 모습이고, 특히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쿨미디어인 인터넷이 가져온 현상이다.
사실 쿨미디어와 핫미디어의 구분은 지극히 상대적인 애매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방송이 쿨미디어였다. 방송에는 몇가지 채널이 있었고,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이 쿨미디어였던 시절에 핫미디어를 굳이 지목하라면 밥상머리를 들 수 있겠다. 방송 이전까지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이었고, 농부는 농사, 양반은 학문이라는 단일한 주제가 화두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가장 강력한 정체성은 가정이었다. 밥상머리에 기반한 가정을 해체한 것이 방송이다. 동시에 방송은 국가를 만들었고, 이 국가를 서서히 해체하는 것은 다시 인터넷이다. 동시에 인터넷은 취향의 경계에 따라 형성되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있다. 국가와 취향 간의 긴장이 일단은 오타쿠, 폐인과 같은 폄하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은 곧 갈등으로 심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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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3 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