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기호,시스템 인간은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인 존재였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이성과 감성의 경계가 모호했다는 말이다. 그러다 (언어와 숫자와 같은) 기호를 발명했다. 기호는 그 태생 자체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감성을 담을 수는 있지만, 기호자체가 감성을 느끼지는 않는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수를 사용하는 것처럼) 기호를 만들면서 이성의 존재를 보다 명징하게 자각하기 시작했고, 기호는 이성적인 도구로써 점점 복잡해지고, 거대해졌다. 그러다 (컴퓨터와 같은) 시스템이 등장했다. 시스템이 기호와 구분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CPU라고 부르는) 프로세스 때문이다. 기호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호란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있을 때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스템이 출현하기 전까지 기호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두뇌 밖에 없었다. 그러다 두뇌를 모방한 프로세스가 등장하면서 이제 기호의 해석은 인간만의 개인기가 아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이 노트북은 혼자서 (C나 C++과 같은 걸로)프로그래밍된 기호에 따라 바이러스를 진단 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하고, 조각 모으기도 한다. 이런 것을 하기에 인간은 게으르고, 잘 까먹고, 금방 질린다. 그래서 인간은 점점 빠른 속도로 이성을 시스템에게 아웃소싱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에게 남은 것은 감성이다. 게시판에서는 박터지게 싸우고, 동영상 플래이어로 야동을 보고, 쇼핑몰에서는 정신없이 신상을 지르는 우리 모습은 참 감성적이지 않은가? 그 뒤에서 잠자코 이런 일을 지원하고 있는 게시판이나, 동영상 플래이어나, 쇼핑몰은 모두 시스템이다. 이들은 감성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지극히 이성적이다. 인간은 감성을 분출할 이성적인 시스템이 필요하고, 시스템에게는 감성을 분출해줄 인간이 필요하다. 언젠가 감성을 위해 인간이 시스템에게 사육되는 날이 온다해도 놀라울 것이 없다. 이성과 감성에 대한 인간과 시스템 간의 크로스아웃소싱. 어떤 이는 긴장으로 보고, 어떤 이는 진보로 보고 + Matrix 2009/05/10 1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