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에 해당하는 글1 개
2009/08/14   행성과 위성, 자아와 자의식 (8)


행성과 위성, 자아와 자의식
행성과 위성, 자아와 자의식

'' 사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지만, '' 규정하는 것은 후천적인 것이다. 편의상 전자를 자아로 부르고, 후자를 자의식이라고 맘대로 부른다. 자아는 때부터 주어지는 빌트인(built in)이다. 안에서 나의 외계를 관찰하고 인식한다. 반대로, 자의식은 후천적으로 득템하는 에드온(add on)으로 추정된다. 자의식은 자아와 다르게 제조된다. 이것은 자아를 복제하고 마치 인공위성처럼 외계로 쏘아 올려진다. 궤도에 진입한 자의식은 자아를 행성으로 삼고 주위를 뱅뱅 돌면서 자아를 관찰한다. 외계에 대한 관찰자인 자아와 자아에 대한 외계의 관찰자인 자의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럼 자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것은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자의식을 생산하는 메이커는 자기혐오고, 이것은 대체로 사춘기의 시대적 우울을 자원으로 한다. 사춘기의 극심한 고통은 살기 위해서 자아를 복제하는데, 복제된 자아는 일단 고통을 분산시킨다. 그 메커니즘의 핵심이 객관화다. 자의식은 주관 속에 갇혀있던 자신을 객관화한다. 객관화는 자기를 '타인'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타인인 양 무심하게 바라보면, 견딜 없는 것도 견딜 있는 것이 된다.




          + 혐오의 역사 




2009/08/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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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iel 2009/08/14 23:47 L R X
스스로를 타인화 해버린다는 것은 곧 자신에 대한 '동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통에 대해서도 견딜 수 있게 되지만... 기쁨도 느낄 수 없게되고 더 이상 마음이 성장하지도 않게 되더군요.
egoing 2009/08/15 09:59 L X
그럴지도요. 그런데 저의 경우 자신의 객관화란 고통도, 기쁨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어요? 좀 더 정확하게는 고통의 하한, 기뿜의 상한이 정해진다고 할까요?
리카르도 2009/08/16 03:28 L R X
자의식이라고 말씀하신건, 아마도 시각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고,
자아라고 말씀하신건, 청각적인 속성을 지닌것같네요.

프로이트는 자아가 욕망을 억제함과 동시에
기억을 상실하기 때문에
과거의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그러더군요.
청소년기에 억제된 감각이 다시 눈을 떳을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키워졌기 때문에
그제서야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거라고 말입니다. :)
egoing 2009/08/22 00:42 L X
청각과 시각... 재미있군요. 딱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느낌이 있기는 합니다. 혹시 어떤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주실 수 있는지요. 물론 옵션입니다. ^^

그리고 종종 드는 생각이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은 다소 과학보다는 종교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과학은 가설에서 시작해서 전제를 검증하지만, 종교는 전제에서 시작해서 논리를 기정사실화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언급하신 프로이트의 부분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어요. 리카르도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욕망을 억압하면서 기억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요. 물론 알려주신 부분은 감사하게 봤습니다. :)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프로이트의 한계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한계라는 생각도 들어요.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어떤 기술의 설계나 사상을 소스에서부터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최종적인 아웃풋을 분해하면서 탐구하는 엔지니어링의 기법입니다. 프로이트를 기웃거려 봤지만, 어렵기도 하고, 진도가 안나가더군요. ㅎㅎ 전 에리히 프롬을 아주 좋아합니다.
리카르도 2009/08/23 22:19 L X
이고잉님의 생각이 저의 평소 생각들과 너무나 흡사해서
가끔식은 내가 쓴 글인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괜시리 글을 적었다가 서로간의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매번 눈팅만 하다 아주 가끔씩 댓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금 적고 있는 이 댓글도 조금은 조심스럽게 적었다는걸 미리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청각과 시각은 모두 외부에서 내부로 입력되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둘다 뭔가를 바라봄에 이용되곤 하지요.

그런데 청각의 경우 매우 시공간적인 제약이 따릅니다.
듣는 순간, 그때 뿐입니다. 공기속으로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매우 정신적 집중이 필요한 것으로(프로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Cathectic enery)
인간의 리비도와 연계되어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항상 외부로만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반면 시각의 경우, 언제든지 보고싶으면 다시 볼 수 있는 특성을 지닙니다.
매우 관조적이고 그래서 청각보다는 집중도가 떨어지는 편입니다.
흥미로운건, 바라봄이란 단지 외부 뿐만이 아니라
내부로도 가능합니다.
리비도에서 해방되었다고나 할까요.

위에서 말한건 맥루헌이 즐겨쓰는 청각과 시각적 속성들입니다.
주의해야 할것은, 위의 시각이란 오로지 "활자적 또는 계량된" 시각을 뜻한다고 봐야
의미가 정확하게 통할 것 같네요.
(제가 맥루헌과 프로이트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두 이론을 섞어서 마시길 즐겨합니다.)

프로이트의 경우 지금 후기이론 책을 잡고 씨름중입니다.
꽤나 많은 꺼리들을 발견했고, 머릿속에서 공상중입니다
그 재미 덕택에 요즘 블로그도 별로 안하게 되었네요.
약 반년동안 천천히 소화해나가며 잘근잘근 한 단어 한단어 소화하고 있습니다.
언제 시간나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프로이트가 유가 2.0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교도 인간의 감성들을 가지고 이론화 했었으니 말입니다.. :)

에리히 프롬도 궁금해지는데.. 프로이트 만큼이나
어려울것 같아 괜시리 걱정되네요.
알고 싶은건 많으나 능력이 부족하니 말입니다.
이고잉님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책이 세권정도 있던데, 어떤책이 가장 좋을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님은 무려 3만권을 읽으셨다고 하니..)

ps : 잠시 찾아봤는데, 에반게리온의 주제가 "Escape from Freedom"와 흡사한것 같네요.
egoing 2009/08/25 10:17 L X
에리히 프롬은 아주 친절한 편입니다. 프로이트가 노자나 장자 같다면 에리히는 글을 길게 쓰는 공자 같다고 할까요? ㅎㅎ

말씀하신 부분은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고, 금방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내요. 천천히 생각해볼 생각입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항상 배우내요. :)
쿨짹 2009/08/23 00:21 L R X
(이고잉님) 취미생활 :)
egoing 2009/08/25 10:09 L X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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