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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4   Van Gogh (2)


Van Gogh
Van Gogh

미술관에 다녀올 생각이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를 보기 위해서이다. 아쉬운 것은 제목과 달리 고흐의 그림은 3점 밖에 없다는 것. 단 한점의 그림이 있어도 고흐의 것이라면 다녀올 만 하겠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처음엔 그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명화라는 명성에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김광석의 노래가 좋아지면서, 산나물의 깊은 맛을 좋아하게 되면서 고흐의 그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느껴지는 것이었다.

고흐는 불같이 살다간 사람이다. 생을 마감했을 때 그의 나이 고작 38. 짧은 인생에서 그림을 시작한 것은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 10년동안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을 들락거렸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흐는 우리와 다른 단지 광인일까? 그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 었다. 세상의 부조리, 보잘 것없는 처지, 사랑하는 여인.... 이런 복잡한 문제들이 그를 둘러싸고 신경을 비틀었을 것이다. 그 고통이 심할 수록 그림을 그렸고, 그림은 저항의 수단이요. 도피할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외면했지만 분명 내안에 존재하는 시퍼렇게 날선 감정들이 뛰쳐나온다. 이 것은 기분 나쁜 경험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화되지 않는다면 이 것들이 서서히 나를 파괴할 것이다. 암세포처럼. 고흐는 나를 대신히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사춘기 때 절망의 끝까지 나를 몰아세우던 시인 기형도가 생각난다. 누군가 절망의 끝에서야 진정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기형도로 인해 촉발되었던 절망은 나를 지배했지만 동시에 희망을 보여주었다. 나의 긍정은 절망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춘기 시절 기형도가 지배했던 오래된 감수성을 고흐를 통해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림만이 아니다. 동생 태오와의 형재애 때문이다. 태오는 고흐의 경재적, 정신적 후견인이었다. 고흐가 엽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후 태오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형의 뒤를 따라간다. 고흐와 태오의 형재애를 기념하기 위해서 동상이 제작되었는데 하나의 몸에 두개의 머리를 하고 있는 흉상이다. 짐작하듯이 하나는 고흐이고 다른 하나는 태오다.

이 동상을 구글에서 찾아봤다. 검색어는 gogh teho. 그런데 고흐에 대한 이미지는 없고 불량하게 생긴 금발머리 사진만 검색되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teho van gogh. 이 친구 때문에 고흐가 검색이 안된다. 호기심에 그의 이력을 살펴봤다. 그는 영화감독이고 이슬람 여성을 비하했다가 이슬람청년에 의해 살해 당한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친구가 고흐의 증손자라는 것. 고흐가 젊은 날 밤에 일하는 여성과 잠깐 관계를 맺었는데 이 때 둘 사이에 생긴 아이가 이 친구의 할아버지인 샘이다. 그의 이름이 teho van gogh이고, 그의 비극적 최후는 고흐의 그것과 꼭 닮아 있지 않은가?

고흐를 지탱해준 것은 5할이 그림이고 5할이 가족이었던 것이다.

2007/02/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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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민노씨.네 2007/08/14 17:56 x
제목 : 79. 기형도와 나
1. 내가 처음 읽은 기형도는 권택영이 읽은 기형도였다. 어떤 잡지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외국 문학]이었던 것 같은데.. . 권택영은 '죽음이 살다 간 자리'라는 짧은 시평을 썼..
민노씨 2007/08/14 17:53 L R X
고흐에 관한 글이지만, 기형도가 반가워서요.
트랙백 보냅니다. : )
egoing 2007/08/15 09:28 L X
기형도.

고등학교 때 교생으로 온
학교선배가 선물한 두권의 시집 중 하나였습니다.
하나는 류시화의 "나는 내가 옆에 있어도 그립다."
다른 하나는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이었죠.
선배가 저에게 기형도 시를 주면서 주의사항을 당부했습니다.
이 시는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고.
그렇게 저의 중세도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는 병아리를 통해 죽음을 경험했다고 하던데,
저에게는 기형도 였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이어서 그렇고,
그의 시속에 흩어져 있는 암시들이
한결같이 죽음의 이미지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저의 사전 속에 살아있습니다.
그로테스크라는 번지 수를 가지고요.
김현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으로 그를 표현했습니다만
저의 사전에서 리얼리즘은
수 많은 죽은자들과 살아있는 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공재 입니다.
그러나 그로테스크는 기형도 혼자서
탐욕스럽게 독점하고 있는 사유재 입니다.
물론 저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만,
그의 탐욕이 너무나 강하고,
그의 욕망이 너무나 견고한 나머지
사유화를 인정당한 샘입니다.

그래서 그로태스크 현실주의는
저에게는 기형도와 리얼리즘이라는 말로 동치될 수 있습니다.

기형도라는 이름만으로도
잊혀졌던 감정들이 뛰쳐나와서
얼싸안고 반갑게 인사하고 있군요.
민노님과 저는 어정쩡하게
그들의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구요.

행복
그 것은 꼭 즐거운 감정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적이 닿지 않는 곳의 고독이
쾌락을 보내 우리를 기만하는 것처럼요.
저와 같이 소박한 '정상인'은
드리워진 그림자 너머에 칠흙같은 어둠을 보며
저기에 머가 있을까?하는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만
고흐나 기형도는
우리를 대신해 그 곳을 탐색하고 있군요.

트랙백과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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